카테고리 없음

복싱을 하며 알게 된 ‘힘 빼는 법’

병아리복서 2025. 12. 27. 02:05

말처럼 쉬웠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복싱을 시작하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단연 “힘 빼세요”였다. 줄넘기를 할 때도, 섀도복싱을 할 때도, 미트를 칠 때도 항상 따라붙었다. 처음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힘을 빼면 주먹이 안 나갈 것 같았고, 제대로 운동하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은 끝까지 말을 안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복싱에서 말하는 ‘힘 빼는 법’은 단순히 힘을 안 쓰는 게 아니었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힘 빼기’는 완전히 틀렸다

초보 시절 나는 힘을 빼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일부러 주먹에 힘을 안 주고, 어깨도 풀어버렸다. 결과는 처참했다. 펀치는 흐느적거렸고, 미트에 닿아도 튕겨 나오는 느낌이 없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무슨 운동이지?”
힘을 빼니까 오히려 더 어색해졌고, 관장님은 또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처음으로 ‘힘이 빠졌다’고 느낀 순간

이상하게도 힘이 빠진 걸 처음 느낀 건 잘 칠 때가 아니었다. 완전히 지쳐서 더 이상 힘줄 여력이 없을 때였다. 미트 막판, 팔이 떨어지고 숨이 가빠진 상태에서 펀치를 냈는데, 그게 오히려 제일 깔끔하게 들어갔다.

그 순간 알았다. 힘이 빠진 상태에서도 펀치는 나갈 수 있고, 오히려 더 정확해질 수 있다는 걸.

힘을 빼게 만든 건 기술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힘을 빼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 리듬에 집중했다. 줄넘기처럼, 호흡처럼,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깨에 힘이 덜 들어갔다.

특히 섀도복싱에서 이 변화가 컸다. 예전에는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했다면, 그다음부터는 흐름으로 움직였다. 흐름이 생기니 굳이 힘을 줄 이유가 없어졌다.

실패를 통해 알게 된 한 가지

한동안 “이제 힘 좀 빠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다시 욕심을 부린 적이 있다. 펀치를 더 세게 치려고 하자, 바로 예전 습관이 돌아왔다. 어깨가 올라가고, 숨이 끊기고, 미트가 다시 힘들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힘 빼는 법은 한 번 배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유지해야 하는 상태라는 걸.

복싱에서 말하는 힘 빼기의 진짜 의미

지금의 나는 힘을 빼라는 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필요한 순간에만 힘을 쓰기 위해, 준비 하는 것.”

항상 힘이 빠진 상태가 아니라, 쓸데없는 긴장을 없애는 것에 가깝다. 이걸 알기 전까지 나는 복싱이 체력 싸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긴장 관리의 운동이었다.


복싱에서 힘을 빼는 법은 설명으로는 절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나처럼 부딪히고, 지치고, 실패해야 조금씩 감이 온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거고, 그래서 어렵다.

지금도 나는 완전히 힘을 뺀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예전처럼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진 않는다. 그 차이만으로도 복싱은 훨씬 덜 힘들어졌다.

혹시 아직도 “힘 빼라”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주 정상이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 다 그렇게 시작한다.
복싱은 결국, 힘을 키우는 운동이 아니라 힘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운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