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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스파링, 꼭 해야 할까?

병아리복서 2025. 12. 27. 15:19

복싱을 하면서 가장 오래 고민했던 질문

복싱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질문을 하게 된다.
“스파링... 꼭 해야 하나요?”
나 역시 이 질문을 몇 달 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다. 체육관 한쪽에서는 스파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쪽에서는 묵묵히 미트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늘 후자였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맞는 게 두려웠고, 괜히 다칠까 걱정됐다.(필자의 키는 188에 몸무게는 100kg가량 된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스파링을 피했다.

스파링을 안 해도 복싱은 충분히 힘들었다

줄넘기만 해도 숨이 찼고, 미트는 항상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샌드백을 치고 나면 팔이 떨어졌다. 이 정도면 운동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사람과 맞부딪혀야 할 이유를 못 느꼈다.

게다가 스파링을 하면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트에서는 관장님이 맞춰주지만, 스파링에서는 상대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점이 가장 부담됐다.

“스파링 안 하면 복싱 아니다”라는 말이 싫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농담처럼 말했다.
“스파링 안 하면 그건 복싱이 아니지.”
그 말이 꽤 오래 남았다. 괜히 반발심이 들었다. 왜 꼭 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싶었다.

그래서 더 버텼다. 스파링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결국 한 번은 하게 된다

그러다 관장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번 가볍게 해볼래요?”
가볍다는 말에 속은 셈이다. 막상 글러브를 끼고 마주 서니 심장이 귀까지 뛰었다. 시작하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연습했던 동작은 하나도 안 나왔고, 나는 계속 뒤로만 빠졌다.

맞기도 했다. 세게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놀랄 만했다.

스파링을 해보고 알게 된 것

의외로 가장 크게 느낀 건 ‘공포’였다. 기술보다 먼저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걸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는 복싱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모른 채 계속 운동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미트를 치는 느낌이 달라졌다. 왜 턱을 내려야 하는지, 왜 가드를 올려야 하는지, 왜 발이 중요한지 갑자기 이해가 됐다. 스파링은 기술을 늘리기보다 의미를 만들어주는 경험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꼭 해야만 할까?

여기서 중요한 건, 스파링이 필수냐는 질문이다. 내 생각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복싱을 체력 관리나 스트레스 해소로 즐기는 사람에게 스파링은 선택이다.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운동이고, 복싱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 왜 동작이 안 나오는지 궁금하다면 – 실전에서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다면 – 복싱을 ‘이해’하고 싶다면

한 번쯤은 경험해볼 가치는 있다.

내가 실패했던 부분

나는 처음 스파링을 너무 크게 생각했다. 잘해야 한다고, 맞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부담을 줬다. 그게 제일 큰 실패였다. 스파링은 시험이 아니라 경험인데, 나는 평가처럼 받아들였다.

두 번째 스파링에서는 생각을 바꿨다. 잘 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서 있어 보자고. 그랬더니 훨씬 덜 무서웠고, 오히려 배운 게 많았다.


스파링은 복싱의 전부도 아니고, 반드시 넘어야 할 의무도 아니다. 하지만 복싱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계기는 될 수 있다.
나에게 스파링은 용기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 한계를 솔직하게 마주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나는 스파링을 즐긴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제는 피하지 않는다. 그 차이만으로도 복싱이 한 단계 달라졌다.

스파링을 할지 말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다만 선택하기 전에, 괜히 두려움 때문에 미루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