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트 치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관장님이 미트를 잡아주고,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시원하게 펀치를 날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미트는 재미있기보다 유독 힘들었다. 줄넘기나 샌드백보다 훨씬 빨리 숨이 찼고, 순서가 다가올수록 괜히 긴장됐다.
처음엔 당연히 체력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트가 힘든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미트는 ‘운동’이 아니라 ‘평가’처럼 느껴졌다
미트가 유독 힘들었던 첫 번째 이유는 심리적인 부담이었다. 줄넘기나 섀도복싱은 혼자 하는 운동이라 실수를 해도 티가 안 난다. 하지만 미트는 관장님이 바로 앞에서 보고 있다. 그 시선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미트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몸이 굳었다. 평소 섀도에서는 잘 나오던 동작도 갑자기 꼬였다.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펀치에 힘을 실었다. 이게 나를 제일 빨리 지치게 만들었다.
힘이 들어가면 미트는 바로 배신한다
미트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힘 빼라”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을수록 더 힘이 들어갔다. 미트는 힘으로 치는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나중에 영상을 찍어보니, 어깨가 귀까지 올라가 있었다. 숨은 멈춰 있었고, 펀치는 전부 한 박자씩 늦었다. 이런 상태에서 미트를 치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콤비네이션이 체력을 훨씬 빨리 깎아먹는다
샌드백은 내 리듬대로 칠 수 있다. 하지만 미트는 다르다. 관장님이 치는 대로 바로 반응해야 한다. 이 반응 속도가 체력을 순식간에 깎아먹는다.
특히 초보자 때는 다음 동작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다. 한 동작, 한 동작을 생각하면서 치다 보니 호흡이 끊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많이 실패했다. 콤비네이션이 길어질수록 머리가 먼저 멈췄다.
미트 대기 시간의 착각
미트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 마시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 차례가 오면 몸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이 상태에서 미트를 치니 더 힘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미트 대기 시간도 운동의 일부라는 사실이었다. 가볍게 발을 움직이고, 호흡을 유지해야 미트에 들어갔을 때 덜 힘들다. 이걸 깨닫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 기준’이었다
돌이켜보면 미트가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잡았기 때문이다. 옆 사람과 비교하고, 관장님의 반응에 신경 쓰고, 한 번 실수하면 흐름이 완전히 무너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틀려도 된다”는 생각으로 미트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숨이 덜 찼고, 동작도 더 자연스럽게 나왔다.
미트가 힘든 건 체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나처럼 욕심이 앞서고, 긴장이 쌓이면 누구나 미트가 제일 버겁다. 미트는 단순한 체력 운동이 아니라, 집중력과 마음가짐이 동시에 시험받는 시간이다.
지금도 미트는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이유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복싱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