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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중급자로 넘어가는 기준은 언제일까

병아리복서 2025. 12. 31. 08:26

복싱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이제 초보는 아닌 것 같은데… 중급자라고 말해도 되나?”
나도 이 지점에서 꽤 오래 헷갈렸다. 체력은 늘었고, 미트도 예전보다 덜 힘들어졌다. 그런데 누가 “중급자세요?”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었을것이다.

기술이 늘었다고 중급자는 아니었다

처음엔 잽, 원투, 기본 콤비네이션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꽤 늘었다고 느꼈다. 미트에서도 관장님이 설명을 덜 해줘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정도면 중급자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스파링이나 미트에서 흐름이 바뀌면 여전히 머리가 하얘졌다. 준비된 동작만 할 줄 알았지, 상황에 맞춰 바꾸지는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기술을 아는 것과,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중급자로 넘어가는 첫 신호: ‘힘 조절’

내가 가장 먼저 체감한 변화는 힘 조절이었다. 예전에는 항상 전력으로 쳤다. 세게 치는 게 잘하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에 따라 힘을 나누기 시작했다.

미트에서 굳이 세게 안 쳐도 흐름이 이어졌고, 스파링에서도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게 됐다. 이게 의외로 큰 기준이었다. 항상 100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초보 단계에서는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중급자처럼’ 하려다 망한 날

한 번은 스스로를 중급자라고 착각했던 날이 있었다. 스텝도 더 쓰고, 복잡한 콤비네이션도 시도했다. 결과는 엉망이었다. 기본 가드가 내려갔고, 숨은 더 빨리 찼다.

그날 이후 느꼈다. 중급자는 더 많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본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초보는 새로운 걸 하느라 기본이 무너지고, 중급자는 기본 안에서 선택지가 늘어난다.

질문이 바뀌는 시점

초보 때는 항상 이렇게 물었다.
“이거 맞나요?” “이렇게 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바뀌었다.
“이 상황에서는 이게 더 나을까요?” “아까랑 뭐가 달랐나요?”

이게 중급자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을 찾는 단계에서, 이유를 묻는 단계로 넘어간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한다

중급자의 가장 큰 특징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는 점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위험한 순간에 가드가 올라가고, 거리감이 무너질 때 발이 먼저 빠진다.

나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맞고 나서 “아,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맞기 전에 몸이 반응하는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복싱 중급자로 넘어가는 기준은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다. 체급표처럼 명확하지도 않다. 다만 분명한 건, 자기 복싱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도 예전처럼 “나는 초보니까”라는 말로 모든 걸 넘기지는 않는다. 그게 내가 느낀 가장 현실적인 중급자의 기준이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비슷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문턱에는 와 있을지도 모른다. 복싱에서 단계는 선언이 아니라, 어느 날 조용히 넘어가 있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