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그만둘 이유는 많았는데, 남은 이유는 하나였다
솔직히 말하면 복싱을 시작한 뒤 그만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손목은 욱신거리고, 다음 날이면 어깨가 안 올라갔다. 처음 한 달은 “이걸 왜 시작했지?”라는 생각을 매번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복싱을 그만두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딱 하나, 복싱만이 주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보다 먼저 찾아온 건 좌절이었다
처음 복싱장에 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TV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어려웠다. 잽은 잽대로 어색했고, 가드는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맞았다. 특히 미트를 치면 숨이 너무 빨리 차서, 옆 사람과 비교하게 됐다. “왜 나는 이렇게 빨리 지치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때가 아마 첫 번째 그만둘 타이밍이었다. 실제로 며칠은 “이번 달까지만 하고 말자”라고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끝나고 나면 기분이 달랐다
운동하는 동안은 솔직히 힘들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복싱장을 나설 때면 묘하게 머리가 맑아졌다. 몸은 분명 지쳤는데, 기분은 가벼웠다. 이게 다른 운동이랑 가장 달랐다.
헬스는 끝나고 나면 ‘오늘도 해야 할 걸 했다’는 느낌이었다면, 복싱은 **‘뭔가 쏟아내고 나왔다’**는 느낌이 더 컸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 감각 때문에 다음 수업을 또 예약하게 됐다.
계속하게 만든 건 실력 향상이 아니라 ‘적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력이 늘어서 계속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반대였다.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느끼기 전부터 이미 계속하고 있었다. 대신 몸이 조금씩 적응했다.
처음엔 3라운드만 해도 숨이 넘어갔는데, 어느 날 문득 5라운드를 버티고 있더라. 잘 친 것도 아닌데, 끝까지 버틴 그날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아, 내가 이걸 해내고 있구나.”
이 작은 변화가 복싱을 계속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실패를 인정하게 만든 운동
복싱은 잘 안 되는 날이 훨씬 많다. 리듬이 안 맞는 날, 계속 맞기만 하는 날, 몸이 무거운 날도 많다. 나도 그런 날엔 괜히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예전엔 그게 싫어서 운동을 그만두곤 했다.
그런데 복싱은 도망칠 수가 없다. 링 위에서는 못해도 그냥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패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게 생각보다 일상에도 영향을 줬다. 잘 안 되는 날이 있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길 수 있게 됐다.
복싱을 계속하게 만든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거다.
“힘들어도,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만들어주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오늘의 내 몸 상태만 받아들이면 된다. 이 단순함이 오히려 오래 가게 만들었다.
지금도 복싱이 매번 즐겁지는 않다. 여전히 힘들고, 가끔은 귀찮다. 그런데도 복싱장을 나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에게 복싱은 운동이기 전에, 버티는 법을 배우게 해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